임팔 작전의 전개와 결과 1편 무타구치 렌야와 일본군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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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팔 작전은 세계 전사에 길이 남을 수준의 실패한 작전으로 2차 세계 대전 중에 일본군이 진행했던 여러 실패한 작전들 중에서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실패한 작전의 사례입니다. 1944년 이 작전의 실패로 동남아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군의 전력은 완전히 무력화되었고, 연합군의 동남아 탈환은 몹시 수월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일본군의 2차 대전 패배는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있던 이야기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돌이켜보면 상당한 병력이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동남아 지역 부대가 임팔 작전으로 일거에 자멸한 것이 연합군의 지역 탈환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임팔 작전은 왜 특이한 것일까요. 전쟁을 하고 있으면 승패는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고, 전투에서 패배한 장수를 쉽사리 처벌하지 않는 것도 전투의 성패는 장수 개인만의 책임이 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크나큰 패배이기는 하지만 임팔 작전의 실패를 우리가 주목해 볼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임팔 작전이 대단히 독특하고 특이한 것은 거의 전적으로 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소수의 수뇌부에 의해 발생한 전적으로 인선의 실패로 인해서 발생하게 되는 인재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한 인선으로 인한 조직의 파멸을 실제로 와닿을 정도로 처절하게 실감할 수 있는 사례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기업에서는 인선의 실패라고 해야 생산성의 저하 수준으로 그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선의 실패는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종국에는 조직을 괴멸로 이를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임팔 작전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타구치 렌야

본격적으로 임팔 작전의 전개를 살펴보기에 앞서서 우리는 무타구치 렌야라는 인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1888년 생으로 일본 육군 사관학교를 나와 중장으로 예편하여 개인적인 커리어로는 상당히 성공한 듯한 외면의 인생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지속적으로 승진하여 중장으로 임팔 작전이 진행되었던 미얀마(버마) 지역에 배속된 출세길을 달리던 군인입니다. 

문제는 이 인물이 상식적으로는 출세가도를 달릴 수 없는 결함 인물이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미 임팔 작전 이전에 무타구치 렌야가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 문제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중일 전쟁입니다. 중일 전쟁은 노구교 사건이라는 일본군의 선공으로 시작되어 중국 전체를 전화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전쟁입니다. 

당시 노구교 사건은 중국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 지나 주둔군 제1보병연대의 병사 하나가 사라진 것을 중국의 공격으로 단정한 일본군이 중국을 공격한 사건입니다. 무타구치 렌야는 당시 해당 보병대의 연대장으로 복무 중이었으며, 1차적으로 병사의 실종에 대한 보고를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보고 초기부터 병력을 출동시키는 등 날이선 대응을 보인 무타구치 렌야는 중국군과 교섭으로 의견을 조율하며 합동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던 이 사건을 전쟁으로 비화시키는 일대 사건을 일으키게 됩니다. 

바로 협상 중에 공격을 개시하라는 지시를 독단으로 결정한 뒤 휘하 부대에 전달한 것입니다. 새벽 5시경 일본군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 전투는 이후 통제 불가의 상황으로 치달아 중일전쟁이라는 거대한 결과로 전 세계적인 비극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일개 군인이 벌인 전쟁의 개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무타구치 렌야는 소장으로 승진한 뒤 이후 중장으로 승진을 거쳐 버머(미얀마)를 담당하는 제15군 사령관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전개는 일본군의 비상 식전인 문화에서 비롯합니다.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폭주하던 당시의 일본군은 정상적인 군대로 볼 수 없는 수준의 문화가 여러 가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계파의 싸움, 계파 간의 비정상 적일 정도로 끈끈한 유대관계, 책임을 무시할 정도로 강력한 계파 간의 정치 알력, 돌출 행동이라도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적극적으로 치하하는 문화 등등.

무타구치 렌야는 평생의 파트너가 되는 카와베 마사카즈(중일 전쟁 개전 당시의 직속상관)의 비호 아래 적극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고 그 계파의 두둔 아래에서 군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편 무타구치 렌야의 등장과 임팔 작전의 입안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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